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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접속일 : 26-01-19 가입일 : 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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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은사시정어리떼.jpg

 

[책소개]

 
말에서 받은 고통이나 상처를 스스로 반짝이게 하는 방법을 깨달은 시들
2018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유정 시인이 문단 데뷔 7년 만에 첫 시집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를 현대시세계 시인선 186번으로 출간했다.
말과 연애하는 자가 시인이고 말과 싸우는 자도 시인이다. 시인은 말에 예민하고 때로는 과민하다. 말에서 희열을 느끼고 말에서 절망을 느끼는 자,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자, 말의 서슬에 가장 많이 가슴을 베이는 자, 창작의 고통으로 백지 A-4를 더 두려하는 자가 시인이다. 남유정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예민한 만큼 더 자주 더 깊이 상처를 받는다. 그의 좋은 시편들이 말에서 비롯된 상처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상처는 건드릴수록 덧난다. 특히 말로 인해서 생겨난 상처는 곱씹으면서 커지고 깊어지기도 하지만 시 「하얗게 부서진 말들」처럼 ‘소문’이라는 악성바이러스까지 더해져서 악화되기 십상이다. 잠자리에 들면 더욱 증폭되는 날선 말들의 데시벨 때문에 잠은 포기해야 한다. “곱씹으며 삭혀보지만” 그건 삭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후벼파는 일이어서 “모래알 씹듯” 입안 가득 고이는 비명으로 잠과 밤은 겉돌 수밖에 없다. “뾰족한 말은 모난 돌이 되어 날아들고/ 가슴에 부딪히며 깨어져 가는 몽돌들” 때문에 잠자리는 “거친 파도가 난무하는 바닷가”처럼 혼란스럽다.
하지만 남유정 시인이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가해자를 향한 저주와 반격의 앙갚음이 아니라, “파도에 둥글어지는 날선 조각들”을 “파도 속에 밀어 넣”어 다독이고 삭이는 견인(堅忍)과 용서이다. 나를 향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해하지 못한 말들”을 해변의 갯바위처럼 고스란히 견디면서 “망각 속에 꿈을 꾸”듯이 하얀 포말로 사라져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남유정은 말에서 받은 고통이나 상처에서 스스로를 반짝이게 하는 방법을 깨달은 시인이다. 표제시 「유난히 반짝이는」에서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시인은 “권태와 졸음을 떨치고” “인생 3막이 시작”되면서 “낭창 휘었다 탄력을 회복하는 거미줄”처럼 재생력이 생겼다. 우연히 우러러본 하늘에는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꼬리치는 것 같은 권적운(卷積雲)이 보인다. 마치 바닷속을 떼지어 몰려가는 정어리떼 같다. “혹등고래들이 뿜어올린 공기방울 울타리 속으로/ 흩어졌다 모”이는 한 무리의 은사시 정어리떼. 남유정의 아픈 시들은 시인을 견디게 하고 독자를 치유하게 한다.
시는 상처의 기록이다. 하지만 상처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상처에 머물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견디는지가 문제다. 지극히 아픈 상처는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껴안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시는 이때에 나오는 부산물이면서 진통제이다. 그래서 남유정의 아픈 시들은 시인을 견디게 하고 독자를 치유하게 한다. 이것이 남유정의 첫 시집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작가정보]
197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2018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사)한국문인협회 하동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 5

    1부 유난히 반짝이는
    까만 울음 · 13
    티눈 · 14
    비문증 · 15
    흰 공 · 16
    하얗게 부서진 말들 · 17
    물 그물 · 18
    유난히 반짝이는 · 19
    튤립 · 20
    카프카의 성 · 21
    저녁 루틴 · 22
    산띠 산띠 산띠 · 24
    혼밥 · 26
    발자국 소리 · 27
    반말 · 28
    건기 · 30

    2부 너무 친밀한 당신
    자화상 · 33
    지워버린 전화번호 · 34
    가로수 · 35
    하지정맥류 · 36
    눈발 · 37
    멸치 한 마리 · 38
    턱의 표정 · 39
    꽃비 · 40
    참돔 미역국 · 42
    노란 입술 · 44
    속도의 경계 · 46
    폐어구 스카프 · 47
    독거노인 · 48
    너무 친밀한 당신 · 50
    내 팔자 · 51

    3부 어디를 가실라고
    호접란 · 55
    질긴 것들 · 56
    황반변성 · 58
    이불 빨래 · 60
    엄마의 눈썹 · 61
    엄마의 밥상 · 62
    공갈빵 · 64
    어디를 가실라고 · 65
    추억 필름 · 66
    꽃상여 · 68
    월미도 디스코 팡팡 · 70
    대문 · 71
    남편의 지갑 · 72
    배롱나무 · 73
    문어오림 · 74

    4부 설산 습지 가는 길
    하늘 연못 · 77
    설산 습지 · 78
    초파일 · 79
    나락 냄새 · 80
    산책 · 81
    기울기 · 82
    후박나무 · 83
    구부러진 못 · 84
    해바라기 · 85
    북극성 · 86
    키질 · 87
    저녁 · 88
    청사포에서 · 90
    앗! 지네다 · 91
    벚나무 아래 · 92

    해설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은사시 정어리떼 / 김남호 · 93

 

 

[추천사]

  • 박남준 (시인)
  •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 그리하여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을 길어올리기도 한다. 사막의 밤하늘을 우러르며 유성우의 황홀을 겪기도 한다. 누구에겐 가는 비처럼 적시며 내리기도 누구에겐 가는 살 에이는 눈보라로, 설레는 그리움으로 쏟아지는 짝사랑, 열병을 앓는 격정과 피 흘리는 죽음 같은 고통으로 온다. 그러므로 시는 몹쓸, 지독한 병이다. 시는 그렇게 찾아오고 매정하게 뒤돌아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선다.
    여기 그 시마(詩魔)에 빠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시의 바다에 풍덩- 뛰어든 새 별의 첫 시집이 있다. 아니 그런데 언제 이렇게 시가 깊어졌지. 그래 지리산자락에
    깃든 대추처럼 붉은 남편이, 아이들이 시인을 키우고 품어주었을 것이다. “배고프다/ 말갛게 씻은 아이들 얼굴 보고 싶다.” 그렇지. 시는 바로 이런 삶의 현장인 것이다.

  • 어릴 때 냇가에서 놀다가 손안에 손바닥만 한 붕어가 들어온 적 있다.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팔딱거리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생명체의 격렬한 움직임을 오래오래 손바닥은 기억했다. 남유정의 『푸른 하늘 은사시 정어리떼』를 읽을 때 문득 그때의 기억을 손바닥이 떠올렸다. 물처럼 무연히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낱말들 사이에서 때로 반짝이고 때로 팔딱거리는 시어들, 어릴 적 기억을 대체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책속으로]

[표제시]

유난히 반짝이는
--
몰려가던 바람이 그물을 쳐놓았다
낭창 휘었다 탄력을 회복하는 거미줄
구름 이파리들도 짧게 꼬리친다
-
푸른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은사시 정어리떼
혹등고래들이 뿜어올린 공기방울 울타리 속으로
구름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격렬한 몸짓으로 돌진하는 무리
우리 삶도 격렬비열 저러하리라
-
흔들릴 땐 단도직입 빛을 향해 진격할 일이다
빛의 길은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다
흔들리고 출렁이다 휠 뿐
-
그 속을 한결같이 헤엄치는 물결
오십 년이다, 권태와 졸음을 떨치고
스스로 빛이 되어 저어가는 오후 3시
나도 저렇게 반짝이며 헤엄쳐왔다
조금 전 인생 3막이 시작되었다
사랑 하나 세월 하나
무심히 건너가는 중
--

[대표시]

설산 습지
--
이 숲에는 끼익 꺼어억거리는 소리
할머니집 부엌문 열리는 소리
호이잇 호이잇 신호를 보내는 휘파람새 소리
삼정마을 입구에서 설산 습지 가는 길
-
절터와 화전민이 살았다는 곳
전쟁통에 모두 죽임을 당했을까
소개령이 내려져 아랫마을로 내려갔을까
온 마을이 자박자박 첨벙첨벙 물의 나라
-
물에 비친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들
소나무가 없었다면 대나무는 넘어졌을까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듯
바람 따라 으이익 으이익 소리
-
인적 없는 곳 나무들이 살고 있는 마을
다리를 슬쩍 걸쳐놓은 듯
어깨를 툭 치고 팔짱을 끼고 흔드는 듯
홀딱 벗고 홀딱 벗고 검은등뻐꾸기 소리
--

하얗게 부서진 말들
--
소문을 집어나르며 거품 무는 집게발들
귓가에 몰려들어 잠 못 드는 밤
곱씹으며 삭혀보지만 모래알 씹듯 겉돈다
-
거친 파도가 난무하는 바닷가
뾰족한 말은 모난 돌이 되어 날아들고
가슴에 부딪히며 깨어져 가는 몽돌들
-
이해하지 못한 말들
망각 속에 꿈을 꾸고
파도에 둥글어지는 날선 조각들
-
닳아진 말들을 파도 속에 밀어넣는다
검은 물결 속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달빛 공기방울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

너무 친밀한 당신
--
매일 전화하는 당신 좋아요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당신 좋아요
사랑한다면 암 그래야지요
친구보다도 더 중요한 당신
-
아침밥을 함께 먹어요
이제 서로를 챙겨야 합니다.
하루 종일 뭘 했는지 궁금합니다
핸드폰 비번을 서로 공유해요
당신은 비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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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하는 장미를 주문합니다 당신이 먹고 싶어하는 파스타를 만듭니다 당신이 가고 싶어하는 바다로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들꽃을 좋아한다니요 당신은 된장국을 좋아한다니요 당신은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니요 그것도 혼자서
-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닮아갑니다
서로를 잃어갑니다
어느새 한몸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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