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
송수권
먹붓을 들어 빈 공간에 선을 낸다
가지 끝 위로 치솟으며 몸놀림하는 까치 한 쌍
이 여백에서 폭발하는 울음……
먹붓을 들어 빈 공간에 선을 낸다
고목나무 가지 끝 위에 까치집 하나
더 먼 저승의 하늘에서 폭발하는 울음……
한 폭의 그림이
질화로같이 따숩다.
- 시집 『꿈꾸는 섬』 (문학과지성사, 1983)
【시인 소개】
송수권 / (1940~2016) 전남 고흥 출생. 197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산문(山門)에 기대어』, 『꿈꾸는 섬』, 『아도(啞陶)』 외 다수, 산문집으로 『다시 산문(山門)에 기대어』,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 외 다수.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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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歲寒)이란 ‘설을 전후로 한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따라서 세한도(歲寒圖)는 엄동설한의 풍경화인 셈이지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수묵으로 세한도를 즐겨 그렸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한도(歲寒圖)’에는 추사 김정희의 것이 유명합니다. 이 그림은 ‘자연의 풍경’을 넘어 추사가 지향하는 ‘선비정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시에서 시인이 보여주는 세한도는 추사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추사의 세한도는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는 가운데 텅 빈 여백으로 극도의 생략과 절제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송수권 시인의 세한도는 “고목나무 가지 끝 위에 까치집 하나”와 “가지 끝 위로 치솟으며 몸놀림하는 까치 한 쌍”으로 “더 먼 저승의 하늘에서 폭발하는 울음”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비상하는 까치를 통해 지상의 아픔을 “하늘에서 폭발하는 울음”으로 승화시키고 있지요.
추사가 선비정신의 엄중함을 기리기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면, 시인은 “질화로같이”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세한도를 그리지 않았을까요. 앙상한 겨울나무 끝의 시린 창공을 배경으로 사랑을 나누는 까치에게서 질화로 같은 온기를 보아내는 시인의 시선은 얼마나 포근하고 웅숭깊은지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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