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평사리 들판과 부부송. 멀리 섬진강이 함께 보인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평사리 들판을 스치고, 섬진강은 너른 들을 비켜 흐른다. 계절마다 들판은 색을 달리하지만, 이곳에 서면 늘 한 시절의 시간이 겹쳐진다.
‘1897년의 한가위’. 대하소설 ‘토지’가 시작된 바로 그 시간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 역시 ‘소설 토지의 배경’이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최참판 일가를 중심으로 소작농과 머슴, 평사리에 살던 민초들의 삶을 따라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의 시간을 관통한다. 26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5부 25편으로 구성된 대하소설로, 수백 명의 인물들이 질곡의 근현대사를 살아낸다.
600~700여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며 소설 끝까지 서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은 ‘토지’의 위대함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평가다. 하아무 박경리문학관장 역시 그런 평가자 중 한 사람이다.

문학관 앞에 서 있는 박경리 선생 동상. 동상은 선생의 뜻에 따라 크지 않게 제작됐으며 독자들의 눈높이와 동상의 눈높이를 맞췄다. 국내에서는 선생의 자취가 남은 강원 원주, 경남 통영, 하동 등 세 곳에 같은 모양의 동상이 설립됐고, 2018년 한-러 문학교류 차원에서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 푸시킨 국립대학교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다.
“등장인물 수만 봐도 압도적이죠. ‘토지’의 진짜 대단함은 그 많은 인물들이 누구 하나 소모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낸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지금도 연구자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텍스트이고, 독자들에게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엿보게 하죠.”
이런 이유로 ‘토지’는 집필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토지’는 1970~1980년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며 ‘국민대하소설’로 자리 잡았다. 평사리와 최참판댁 또한 이 무렵 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하지만 소설과 영상 속에 존재했던 최참판댁은 당시 없었다. 평사리는 실재하는 지명이었지만 최참판댁은 철저히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세계였다.
하 관장은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쓰는 동안은 물론, 완간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곳을 직접 찾은 적이 없었다”고 전한다.
선생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옛이야기에서 ‘토지’의 영감을 얻었고, 수많은 인물들의 질긴 삶을 담아낼 공간으로 지리산과 섬진강을 떠올렸다. 참판이 살았음직한 너른 들판이 필요했고, 그렇다면 전라도 어딘가도 가능했겠지만 통영 출신인 작가 특유의 말맛을 살리기에는 악양 평사리가 가장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하 관장의 짐작이다.
작가가 직접 쓴 소설 서문의 말처럼 ‘지도 한 장 펼쳐 놓고 토지의 기둥을 세운’ 그곳은 철저히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낸 공간이다.

소설 토지의 최치수(최참판)의 공간이었던 사랑채.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그러나 소설이 인기를 얻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지자 독자와 시청자들은 그 상상의 공간을 구태여 현실에서 찾기 시작했다.
소설과 영상 속 공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큰 아쉬움이었다. 결국 1998년, 당시 하동군청 석민아 주무관(현 하동군 문화환경국장)이 소설 속 상상의 공간인 최참판댁을 현실로 불러내자 제안했고, 2001년 지리산 자락의 최참판댁은 상상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이 됐다.
“2001년 최참판댁 준공에 즈음해 처음 열린 토지문학제 개막식 때, 박경리 선생이 처음 이곳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아, 다행이다’였어요.”
하 관장은 그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당신(선생)의 상상으로 그린 공간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 안도의 말씀이었겠지요.”
오늘의 최참판댁은 ‘토지’를 읽은 이들에게는 소설 속 장면을 되새기는 공간이고, 읽지 않은 이들에게는 수많은 인간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소다. 무딤이들(하동사람들이 평사리 들판을 부르는 또다른 이름, ‘섬진강물이 무시로 넘나드는 들’이라는 의미라고 전해진다)과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랑채 누마루에 서면, 깡마른 최치수(최참판)가 마른 기침을 하며 나와 곁에 설 것만 같다.
소설 토지의 ‘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서희와 서희의 엄마인 별당아씨의 공간, 별당채와 연못.

박경리문학관 내부에 전시된 토지 인물 형상도. 6~700여 명에 달하는 수많은 인물 중 서희와 최참판, 윤씨부인 등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마치 가족사진처럼 그려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채에서는 강단 있는 윤씨 부인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고, 별당 연못가에서는 하루 밤새 자취를 감춰 버린 엄마를 애타게 찾는 서희의 투정이 들리는 듯하다. 최참판댁 주변의 초가에서도 수많은 소설 속 인물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간혹 이곳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20여 년 전 실제 건물이 아니라는 점에 실망하는 분들도 있어요. ‘토지’를 읽고 오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곳에서 소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 또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가족과 이웃, 나아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존중,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는 ‘토지’의 서사를 느끼고 또 느끼게 하는 그런 출발점이 되는 공간이었으면 하죠.”
현재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에는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작은 시골 마을을 바꾼 힘의 정체에 대해 하 관장은 단언한다. “바로 ‘토지’!, 콘텐츠의 힘이죠”.
누군가는 토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고전은 누구나 아는 책이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이고, 소설 토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격하게 공감되는 문장이다.
상상을 현실로, 현실에서 다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좋은 순환의 공간, 그냥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평온하며 아늑한 악양 평사리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각자 저마다의 방식과 속도로 소설 ‘토지’와 처음 혹은 다시 만나는 그런 장소로 최참판댁이 기억됐으면 한다.
정영식기자 jys23@gnnews.co.kr 취재도움 = 하아무 박경리문학관장
박경리문학관 내부. 선생이 생전 직접 사용했던 필기구를 비롯한 육필원고, 돋보기와 안경, 남색 원피스, 운동화 등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출처 : 경남일보(https://www.g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