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 취지문
한국 문학의 걸출한 작가 나림 이병주 선생이 유명을 달리한 지도 벌써 13년의 성상을 헤아리게 되었다. 1921년 산자수명한 고장 하동에서 태어나 1992년 타계하기까지 70여 년의 세월이 선생의 생애였으되, 그 생애는 한국 근대사의 아프고 슬픈 여러 사건들이 휘몰아친 격동의 현장이었다.
이 고난의 시기를 안으로 삭이고 문필로 가공하여, 선생은 탁발한 체험적인 인식의 작가로서 소설적 발화법의 뛰어난 형상력, 그리고 근·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의 역사성을 확립해 놓았다.
데뷔작 『소설·알렉산드리아』에서 대하장편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선생의 작품에서 문학적 사상 및 세계관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그것을 소설로 풀어내는 장쾌한 작품구조와 호활한 문장을 배웠다.
더욱이 시대 현실에 대한 문학적 각성도 사라지고 삶의 여러 부분을 절실하게 반영하는 개별적인 형식 실험에 침윤해 있는 오늘날, 선생과 같은 수발한 작가, '새로운 한국의 발자크'를 기대하는 일이 섣부른 꿈으로 그치고 말 것 같아 두려운 형국에 있다.
그러기에 다시 이병주 선생인 것이다. 선생의 생전에 선생을 '정신적 대부'로 받들고 그 작품을 탐독하던, 광범위한 영역의 옛 독자들에게 소박하고도 소중한 충정을 담아 이 글을 보낸다. 동시에 이것은 이병주 선생을 중심에 둔 새로운 독서문화운동의 제안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병주기념사업회가 구성되어 건실한 독서의 진작과 아름다운 마음의 교류를 나누는 마당이 마련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끈기와 보람을 갖고 추친해 나가려 한다.
첫째, 이 모임을 통해 글읽기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의 건실하고 격조 있는 문학적 만남을 주선하려 한다. 이병주 선생의 소설 읽기와 이를 기리는 일에서 시작하여, 평범한 일반적인 독자에서부터 전문성을 가진 문학연구자나 비평가가 정기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그 글 읽는 즐거움과 깊이 있는 문학 해석을 함께 추구하는 모범을 만들고자 한다.
둘째, 이병주 선생의 문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류하여 전집을 발간하는 한편, 그 문학 논의의 광장을 새롭게 펼쳐보려 한다. 작품의 수준에 따라 선별과정을 거쳐 값있는 글을 모은 발간사업을 진행하면서, 이와 더불어 이병주문학상을 제정·운영하여 후진을 격려하는 뜻깊은 문학행사도 추진하려 한다.
셋째, 여기에 참여하는 이병주 선생의 지인들과 독자들이 수준 있는 유대와 친분을 나누는 동시에, 이러한 글읽기 운동이 범국민적 정신문화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확장하려 한다. 그간 경남 하동의 '나림이병주선생기념사업회' 활동을 발전적으로 확대하여, 일 년에 한 번 지리산 자락의 그 고장에서 풍성한 문학축제를 개최하는 등 우리 생애에 기억될 뜻 깊은 문학적 체험을 마련하려 한다.
이상과 같은 발기의 뜻에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 그리고 문학인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실 것을 기대해마지 않으며, 그러한 따뜻한 동참의 마음이 이 뜻 깊은 문학운동의 미래에 긴요한 주춧돌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2005년 11월
이병주기념사업회 발기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