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1965년 마흔 네 살의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선생은,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천여 매의 원고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선생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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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알렉산드리아』 | ||
1965년 7월 잡지 <세대>에 실린 중편소설이다. 5·16쿠데타 이후 필화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서정적 필체로 '게르니카의 학살'과 '유대힌의 학살'에 빗대어 폭압정치를 비판한다.
"황제는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노예가 될 수 없다. 나는 단순히 황제로서의 비자유를 노예의 자유와 바꿀 수 없다는 심정을 가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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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연락선』 | ||
1968년 4월부터 1970년 3월까지 <월간중앙>에 연재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 시기를 살았던 지식인의 전형이 유태림이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학병동원 등 작가의 체험이 반영된 장편소설이다.
"중학교 역사책을 보면 의병을 기록한 부분은 두세 줄밖에 되지 않는다.그 두세 줄의 행간에 수만 명의 고통과 임리한 피가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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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
1972년 9월부터 1977년 8월까지 잡지 <세대>에 연재되었다. 1933년부터 1956년까지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로 남한 내의 빨치산 및 남로당의 활동을 소설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선택에 따라 부침을 겪는 좌우익의 여러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사상에 지조가 없으면 속물의 박식이 되고 만다. 속물의 박식을 갖고는 대중을 지도할 수 없고, 인류를 진보시킬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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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 ||
1974년 1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신동아>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해방 이후부터 4·19에 이르기까지 권력에 줄을 대고 입신한 어느 기업인의 입신과 몰락을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해방 이후현대사의 질곡을 비판적 안목으로 담아 냈다.
"우리에갠 청춘은 없었다. 청춘은 광택이 있어야 하는 거다. 진리에 대한 정열로써, 포부를 가진 사람의 자부로써,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으로써 빛내야 하는 건데, 우리에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게 그런 것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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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어사전』 | ||
1976년 4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문학사상>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지식인의 소시민적 생활을 그린 세대소설이다. 로맨스와 세대묘사, 소설적 재미가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문학이란 비록 그것이 졸렬할망정 행복의 사전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행복에의 메시지, 행복에의 메시지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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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碑)』 | ||
1977년 2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조선말기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그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는 장편역사소설이다.난세 속의 지사(志士)와 재사(才士)들의 '공화국에의 꿈'과 희망의 서사가 방대한 자료, 날카로운 역사의식을 배경으로 펼쳐 진다.
"국호를 신(晨)이라 할 것이다. 새벽이라는 뜻의 '신'이다. 일찍이 이 이름으로 우리의 강토를 부른 적이 있다. 오늘부터 우리는 신국(晨國)의 국민으로서 살 결의를 해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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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의 작품들 | ||||
『낙엽』 | 『망명의 늪』 | 『비창』 | 『남로당』 | 『그해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