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이병주(李炳注, 1921~1992) 작가의 본관은 합천, 호는 나림(那林)이다. 1921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아버지 이세식과 어머니 김수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하였으나,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퇴하였다. 한때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지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1948년 진주농과대학 교수, 1951년 해인대학(海印大學, 현 경남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 등으로 활발한 언론 활동을 하였으며, 1965년 마흔 네 살의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선생은,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천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이 대학에 재직중인 1953년, 32세 때 첫 장편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부산일보>에 연재하였다. 이는 당시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었으며, 훗날 문화방송 사장이고, 함께 필화사건에 걸려 옥고를 치르기도 한 황용주(黃龍珠)와 편집국장 이상우(李相佑)가 합심하여 지방신문소설을 육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게 한 것이다. 그로서는 중앙 문단에 데뷔하기 전 첫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1955년부터 부산 국제신보 편집국장 및 주필로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61년 5·16으로 인한 필화사건으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고 복역하였다. 2년 7개월 만에 출감한 뒤 서울로 옮겨 한국외국어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맡았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 중편소설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世代)>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는 시인 신동집(申瞳集)과 문학평론가 이광훈(李光勳)의 강력한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정치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다원적인 문제를 새롭게 접근하여, 처음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계속하여 『매화나무의 인과(因果)』(1966)·『마술사』(1967)·『쥘부채』(1969)와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1970)·『망향』(1970)·『여인의 백야(白夜)』(1972∼1973) 등을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관부연락선』은 일제강점기부터 6·25까지의 한국 지식인들을 역사적 방법으로 다룬 점에서 문제작으로 꼽힌다. 그 뒤 죽을 때까지 한 해도 빠짐 없이 중·단편을 발표하거나 또는 신문·잡지 등에 장편소설을 연재하였는데, 그 안에 펴낸 소설집만도 60권 이상이 된다.
특히, 『관부연락선』·『지리산』·『산하』·『바람과 구름과 비(碑)』·『남로당』·『그해 5월』등의 대하장편들은 그러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으로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문학은 역사의식 부재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문학은 역사와 시대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좌·우익의 대립, 그리고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는 거의 지식인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지리산』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비극적 인간들, 『변명(辨明)』의 젊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역사를 위한 변명들, 그리고 마지막 미완의 작품인 『별이 차가운 밤이면』의 일본 유학생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문학정신에 튼튼한 자양분을 이루며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탁월한 평가를 받게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정부수립, 6·25 동란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한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력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교사에서부터 대학교수, 신문사 편집국장·주필에 이르기까지 그의 경력은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일본 유학, 학병, 중국대륙에서의 졸병 생활, 국회의원 입후보, 정치범으로 몰린 2년 7개월간의 감옥 생활 등 그가 겪은 역경도 특이하다.
말술을 사양하지 않는 호방한 성격에다가, 박학다식하며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교우 관계 등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특징이다. 1976년 장편 『낙엽』으로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으며, 1977년에는 중편소설 『망명의 늪』으로 한국창작문학상을,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병주 작가는 장기간 미국에 머물며 대하소설 『제5공화국』을 집필하던 중 지병이 악화되어 1992년 귀국한 지 1개월 만에 작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