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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_bullet.png 문학공원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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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李炳注/Lee Byengju)

이병주(李炳注)의 본관은 합천(陜川). 호는 나림이다.

월간 『마당』(1984년 11월호)에서 이병주는 '나림'은 '어떤 숲'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921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에서 아버지 이세식(李世植)과 어머니 김수조(金守祚)    사이에서 3남 1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해방후 진주림중학교 교사,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 부산 <국제신보>주필 등으로 활약하다 5·16쿠데타 때 필화를 입어 수감되었다. 1965년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등단하여, 『관부연락선』·『지라산』· 『산하』· 『그해 오월』· 『행복어사전』등 80여 권의 소설을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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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주 동산 스토리


 

Story1 출생과 유년기  

Story2 메이지대학 졸업과 학병동원

  Story3 대학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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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하동에서 태어나 1931년 북천공립보통학교, 1933년 양보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1936년에 진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절 동서양 고전에 대한 독서에 열중했다.   1941년 4월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예과에 입학하여 문학을 공부했다. 1943년 9월 졸업 후 1944년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소주에 주둔한 제60사단 치중대에 배치,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6년 9월 15일 진주농림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1948년 10월에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학교)으로 발령받아 중학교 교사직과 겸임했다. 진주농과대학에서 영어와 불어, 철학과목을 강의하고, 연극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52년부터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Story4 국제신보 입사와 필화사건

 

Story5 등단과 작품활동

  Story6 말년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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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발한 언론활동을 하다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는 논설의 필화사건으로 혁명재판소에 회부되었으며(1961.5.21), 2년 7개월 동안 복역했다.  

1965년 마흔 네 살의 나이로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80여 권의 작품을 남겨 '한국의 발자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대표작인 『관부연락선』과 『지리산』등은 우리 소설사의 기념비적 작품들이다.

  신경남일보 명예 주필 겸 뉴욕지사장으로 활동하며 『별이 차가운 밤이면』을 집필하던 중 1992년 4월 3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 문학 산책로


 이병주 문학공원의 한 켠에는 문학 산책로가 있으며, 여기에는 선생의 등단 작품인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하여 대표작품인 『관부연락선』 , 『지리산』,『산하』, 『행복어사전』, 『바람과 구름과 비(碑)』의 작품 설명과 작품 중에 나오는 명구를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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