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번 소설집 『아디오스 땅고』에는 6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개별 작품들이 지향하는 목적지와 소재 배경은 서로 다르나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되돌아옴’의 변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길 위에서 번민하고 성찰하면서 각자가 꿈꾸는 삶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히말라야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한국인 선장 권 씨를 만나고 그와의 인연으로 여수 바다에 정착하여 이질적인 삶을 극복해 나가면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헥토파스칼 여수」, 방황과 번뇌 끝에 도달한 영원한 안식처인 동래입춤 춤판을 회상하는 노인과의 만남으로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아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화해에 이르는 「피안의 춤」, 아르헨티나 시골 부두에서 승선 대기 중 만난 이국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의 아픔, 그러면서도 다시 운명처럼 바다로 떠나야 하는 「아디오스 땅고」, 사촌 동생의 부음을 받고 시골 고향을 찾게 되면서 과부들만 남은 그곳 인척들의 따뜻한 환대와 인간애를 통해 죽음과 이별은 아픈 상처를 남기지만 남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젊은 날의 아버지와 화해의 길로 돌아오는 「넬라 판타지아」, 부모의 불행한 죽음으로 고난 속에 살아야 했던 고향을 등지고 바다로 떠났던 사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 친지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지난 시절 라스팔마스에서의 생활과 병치시킨 「간절곶 등대에서 길을 묻는다」, 대양으로 나간 원양어선의 젊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드리워진 애환과 운명 그리고 이들의 희망이자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하는 바다의 두 얼굴을 그린 「무중항해」, 이는 모두 불안정한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노정 속의 일들이며 그 위에서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떠남과 돌아옴의 관계를 정교하게 전개한 작품들이다.
[작가 소개]
1961년 부산 출생
1984년 부경대학교(구 수산대학교) 어업학과 졸업
1984년 ~ 1998년 원양어선 선장, 냉동운반선 운항 감독관 등 역임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 수상(중편소설)
2018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단편소설)
2018년 등대문학상 대상 수상(단편소설)
2019년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중편소설)
2019년 금샘문학상 대상 수상(단편소설)
2020년 한국해양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장편소설)
[작가의 말]
늦은 나이에 입문해 말이 되는지 글이 되는지 분간도 못하며 끄적거렸던, 거칠고 투박한 몇 편 글을 묶어낸다. 바다를 주 무대로 전문용어를 쓰는 본격 해양소설도 있지만, 뭍에서도 거북하게 이어지는 땅 멀미 같은 다양한 뱃사람들 삶의 결을 풀어보고 싶었다.
만감이 교차한다. 멋쩍고 부끄러움이 먼저다. 바다와 한 판 맞장 떠보겠다던 젊고 무모했던 천방지축 뱃놈 시절, 출가의 길처럼 멀고 아득하던 첫 뱃길까지 겹쳐 떠오른다. 누군가가 책을 펴낼 때 자식 하나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표현을 썼던데, 이제 그 심사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겠다.
몇 년 짬밥이랍시고 주워듣고 본 건 있어서 시간 지난 서툰 글들을 다시 손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 문장, 제대로 연마하지 못해 질질 늘어지는 호흡 같은 것들을. 하지만 어설퍼도 그것 또한 나 자신이기에 그대로 두기로 한다.
바다를 떠나서 배를 떠나서, 오리무중 헛갈리기만 했던 세상을 이러구러 살아오며 늘그막에 하필이면 택한 이 길, 지지리 궁상에 돈도 안 되는 이 길을 허락해 준 가족에게 미안하다.
과연 내가 가야 할 바른길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의문이다. 어쩔 수 없지 않나. 나를 바꿀 필요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며,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도와 바람에 거역하지 않고 나를 내맡겨 표류하는 수밖에.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이 있었다. 발문을 마련해주신 문성수 선배님, 첫 독자처럼 꼼꼼히 읽고 교정을 봐주신 도서출판 가을의 정연순 대표와 오창헌 시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럿 스승도 만나고 도반들도 생겼다. 모두에게 고맙다. 감히 대놓고 언급하기보다 마음속으로만 일일이 호명하며 정중히 고개 숙인다. 그게 더 나답다는 걸 그분들이 먼저 아실 것이니.
[출판사 서평]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되돌아옴의 변주
- 소설가 문성수
하동현에게 바다는 운명이다. 바다는 마치 옹이처럼 가슴에 박혀 빼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잊을 수도 없는 존재 근원의 아픔이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 모두가 바다를 전경화하지 않는다. 해양 작가 대부분이 해상 생활을 구체적으로 서사화한 인파이터라면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아웃파이터다. 물론 몇 작품은 사방이 수평선뿐인 선상의 고독과 인간의 욕망 그리고 자연의 위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바다를 향한 작가 의식이 반영되고 있을 뿐 해양소설이라는 한 가지 색채로만 묶어내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가 이 작품집에서 보여 준 소설적 상상력은 매우 다양하고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일반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내미는 잽이나 펀치는 묵직하다.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장면 묘사와 문체의 안정감은 주제 형성의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고, 경험 과잉에서 오는 감정과 정서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그의 서사 능력은 인물과 행동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있다. 선정적 소재주의나 지나치게 파편화된 개인 서사가 늘어나는 요즘의 소설 현장에서 담백하면서도 선 굵은 남성적 서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를 통해 다양한 인간사를 다루고 있는 그의 문학세계가 더욱 깊어지길 바라는 이유다. 다음 작품집을 기대한다.
[하동 박경리문학관TV 소개 영상]